
샛별성 @petterfly_F
산 속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에 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들은 산 깊은 곳 어느 계곡에서 처음 만났다. 둘 모두 형제가 없고 또래의 친구들도 없었던 탓에 두 아이는 빠르게 친해졌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놀던 중 아이 중 작은 아이가 큰 아이에게 주저하며 말했다. 최근 들어서 자꾸만 날개죽지가 가렵고 무언가 툭 튀어나와 부딪힐때마다 아프다는 이야기였다. 그에 큰 아이는 웃음을 터트리며 저가 긁어주겠다며 손을 뻗었다. 그렇게 닿은 작은 손은 마른 등에 자리잡은 어떠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 심각한 얼굴로 제게 등을 보이는 작은 아이에게 옷을 올려볼 수 있느냐 말했다. 걷어올려진 옷 사이로 드러난 마른 등의 날개죽지엔 깃털로 된 작은 무언가가 돋아나 있었다. 그것에 소스라치게 놀란 두 아이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모르는 두 아이만의 비밀이 생긴 날이었다.
그 날 이후로 두 아이가 자랄수록 작은 아이의 등에 돋아난 깃털뭉치도 점점 커져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작은 아이는 눈이 어두운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탓에 그 깃털뭉치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아이들이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갔다. 그러는 동안 작았던 아이가 저보다 컸던 아이보다 더 자라나고 그에 따라 작던 깃털뭉치는 아이의 몸집만큼 더 커져 완전한 날개의 형태를 띠었다.
청년이 된 작은 아이는 이제 저보다 작은 큰 아이말고는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저의 등에 자리잡은 날개를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달갑게 받아들일 이들이 없을거란 걸 잘 알아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작은 마을에 몇 몇의 비밀스런 손님들이 찾아왔다. 정확히는 그 산이었지만. 두 아이는 여느때처럼 산 속을 돌아다니던 중 그 손님들과 마주쳤다. 손님들의 등에는 하나같이 작은 아이처럼 날개가 자리잡아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경계하는 것은 오히려 작은 아이쪽이었고, 반기는 것은 큰 아이 쪽이었다.
살가운 큰 아이와 손님들은 금새 친해져 서로 장난을 칠만큼의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웃고 떠들고있으면 늘 작은 아이는 큰 아이의 뒤편에 숨어 조용히 있었다. 손님들 중 한 이가 그런 작은 아이에게 다가와 다정히 말을 걸었다. 큰 아이와 닮은 웃음과 따뜻한 손길에 작은 아이는 저도 모르게 경계를 풀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이후로 손님들과 작은 아이도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에 손님들이 작은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자신들과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작은 아이는 거절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큰 아이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가고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격하게 반응하는 작은 아이와 다르게 큰 아이는 침착했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 것이느냐고 물었다. 손님들은 대답했다. 어디든, 하늘을 날며 불어오는 바람의 이야기에 따라 가고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라고. 큰 아이는 말없이 작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큰 아이의 눈동자가 알 수 없는 빛으로 반짝였다. 그 큰 눈동자 속에 작은 아이가 비춰지고 있었지만 아이는 그를 보고있지 않았다. 더 멀고, 더 깊은 무언가를 보고있었다.
그날 이후로 큰 아이는 손님들이 없을때도 작은 아이에게 종종 그 이야기를 꺼내었다. 자기는 작은 아이가 함께 떠났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작은 아이는 화를 내었다. 저가 어딜 가겠느냐고. 큰 아이를 두고서, 눈이 어둡고 몸이 약한 제 할머니를 두고서 어떻게 가겠느냐고. 그러면 큰 아이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서 작은 아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것이 나와 아이의 여태까지의 이야기다.
나는 내 앞에 선 아이를 바라보면서 잠시 이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울먹이는 아이의 얼굴에 어린 날의 그 얼굴이 겹쳐보였다. 처음 등이 가렵고 아프다며 울먹이던 그 모습이. 그때에 비하면 참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아이의 등에 자리잡은 커다란 날개도, 앳된 티가 거의 사라진 성숙한 그 얼굴도. 나는 자꾸만 나를 뒤돌아보며 주저하는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저 높은 하늘에서 빛나던 것들의 무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이에겐 시간이 없었다. 나는 초조함에 계속 아이를 우리가 서있던 절벽 끝으로 밀어냈다. 아이는 눈물에 젖은 속눈썹을 아래로 늘어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시야에 아주 선명하고 분명하게 가득차는 그 모습에 약해지려던 마음을 다잡고 나는 아주 태연한 목소리를 내었다. 아이에게 최대한 담담하고 의연하게 보이도록. 나는 노력했다.
..지금 아니면 못갈거야.
어서 가. 가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
이젠 네 할머니도 더이상 안 계시고 나도 너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어.
그러니 어서 떠나서 나는 가보지못할 곳까지 네가 대신 다 가줘.
....더이상 날 못볼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아? 진짜로?
조금은 서운함이 섞인 아이의 어리광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살짝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그런 내 모습에 조금은 안심을 한듯 눈을 빛내었다. 소용없는 일이었는데.
..솔직하게 안 괜찮아.
그런데 왜 가라고 해!
그냥 안 가고 너랑 있을래.
그게 맞으니까.
나때문에 널 포기할 필요는 없어.
어서 가.
나는 다시 한번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지만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완전히 나를 향하도록 몸을 돌리곤 저의 등에 닿아있던 내 손을 굳게 다잡았다. 손끝에서 닿아오는 익숙한 온기에 문득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다.
난 괜찮아.
내가 포기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희망에 찬 눈으로 말을 쏟아내는 아이의 말을 나는 가로막았다. 조금은 밝아졌던 아이의 얼굴이 다시 슬퍼졌다. 그렇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 안되었으니까. 나는 단호한 얼굴로 아이의 등에 돋아나있는 새하얀 날개를 가리켰다. 아이의 시선이 잠시 제 뒷편으로 향했다 돌아온다. 조금은 허망하고 원망이 섞인 아주 복잡한 감정이 나를 향한다.
내가 안 괜찮아.
너랑 같이 있으면, 너의 그 날개를 보면 계속 생각날거야.
내가 널 붙잡았다는 걸.
널 못 보는것보다 그게 더 안 괜찮아.
아냐, 괜찮아 진짜로.
어차피 나는 가고싶지 않아.
나는 지금처럼 이렇게 너랑 있는게 더 좋아.
내가 보내줄 때 가.
그리고 다음에 날 보러와.
여기서 널 기다리고있을게.
많은 걸 보고와서 나한테 이야기해줘.
나는 여기서 있었던 일을 너한테 얘기해줄게.
그러면 되는 거잖아.
내가 잊으면 어떡해?
아니면 내가 돌아왔을때 네가 여기에 안 있으면?
잊을거야?
나를? 그리고 여기를?
나는 여기 계속 있을거야. 내가 어딜 가겠어.
애원섞인 목소리에 나는 되려 서운한 얼굴로 아이에게 되물었다. 그런 내게 아이의 당황한 시선이 돌아왔다. 잔뜩 혼란스러워하던 눈빛이 이내 단단하게 변한다. 나는 아이의 눈동자 속에서 그것을 확인하곤 환하게 웃었다. 참 순수하고 올곧았다. 아이는. 정말로. 그래서 나는 안심했다. 정말 아이를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어떻게 잊겠어.
그럼 됐어.
그거면 충분해.
그러니 어서 가.
시간이 없어.
지금이 아니면 안되잖아.
그래도..
그만.
됐어, 어서 가.
네가 안 가면 내가 떠날거야.
네가 절대 찾지 못할 곳으로 말이야.
...
대답없이 가만히 나만을 바라보는 아이에 나는 참 이기적인 말을 내뱉으며 아이의 양손을 굳게 다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내 가슴팍으로 끌어왔다. 잠시 아이의 시선이 내게서 제 손으로 향했다. 그에 나는 다시 힘을 줘 아이의 시선을 내게 향하도록 만들었다.
넌 항상 나한테 져줬잖아.
이번에도 나한테 져줘.
그럼 앞으로는 내가 네 말 다 들어줄게.
응? 착하지 우리 아가.
...
아가라고 그만하랬잖아.
응, 그만할게.
그러니까 어서 약속해. 떠나겠다고.
..알겠어.
대신 약속 꼭 지켜.
물론이지.
....
잔뜩 쳐져있는 아이에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늘 아이가 좋다고 말해주었던 그 미소를.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계속 그렇게 울상 지을거야?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데 웃어줘.
나도 이렇게 웃고있잖아.
..응. 웃을게.
착하다.
자, 어서 가.
다들 기다리겠다.
...응.
나는 아이를 한차례 꼭 끌어안았다. 내 마음이 전해지도록. 네가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내 간절한 마음이 아이에게 닿도록.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던 팔에 힘을 풀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자연스레 멀어진 거리에 아이의 얼굴이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의 뺨을 다정히 쓸어내리며 나는 이별의 말을 내뱉었다. 이제 정말 안녕이었다. 아이와 나는.
안녕.
..안녕.
그렇게 결국 아이는 떠났다. 내 눈앞에서. 내 부탁으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늘 함께 있었던 그곳에서 나를 남겨두고. 생각보다 쉬운 이별에 나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서운함을 지우려 애썼다. 아주 모순적인 서운함에 나는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기적인 XX. 짧게 욕을 읊조렸다. 그리고 다시 아이가 사라져가는 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하늘 아래 태양빛에 반짝이는 두 날개가 참 눈부셨다.
사실 알고있었다. 우리가 다시 볼 일은 없을거란걸. 내가 이곳에서 계속 기다리더라도 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란걸. 하지만 너를 떠나보내는 게 맞는 일이어서 나는 너의 등을 떠밀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아주 오랫동안 나는 널 기다리고 결국 너는 날 잊겠지만, 나는 괜찮았다. 나때문에 너의 그 찬란한 비행을 포기하게 둘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네가 떠난 자리에 남은 깃털을 소중히 끌어안았다. 내가 널 기억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앞으로 너와 내게 남은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을 담은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것을 간직하며 너를 추억할 것이다. 자유롭게 세상을 비행하며 많은 것들을 보고 기억하며 서서히 나와 이곳을 잊어갈 너를 사랑할 것이다.
허울뿐인 약속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내 눈앞에 자꾸만 찬란히 빛나던 너의 그 새하얀 날개가 아른거렸다.
아주 큰일이었다.
나는 벌써 네가 그리웠다.
네 빈자리가 너무 컸다.
그렇지만 나는 후회하진 않았다.
앞으로의 너는 행복할테니까.
아주 자유로울테니까.
나는 그거면 되었다.
정말로.
나는 괜찮았다.